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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교회 미디어팀에서 알립니다.

지금까지 목사님 블로그와 교회 홈페이지가 따로 떨어져있었습니다.
언제가는 하나로 합쳐야하는 작업이었는데,
이번에 통합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이번 작업을 마치면,
스마트폰에서도 목사님 설교, QT, 칼럼, 성전 꽃꽂이 등을  보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새로운 집 주소는 http://thegreen.or.kr  입니다.

* 추신:
1. 옛날 교회 홈페이지로 가서 사진 등을 보고 싶으신 분은 http://thegreen.onmam.com 으로 가시면 됩니다.
2. 목사님의 블로그는 http://thegreen.tistory.com 현 상태를 유지합니다. 
3. 새로운 RSS 주소: http://thegreen.or.kr/r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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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푸른교회 노나라의별

무슨 권위로

칼럼 2011/05/14 10:02
난장판이 된 성전을 목격하신 주님이 장사하는 무리들의 집기를 둘러 엎으시고 비둘기와 양들을 몰아내시며 <너희가 기도하는 집인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의분을 터뜨리셨습니다. 이를 본 젊은이들은 만세를 부르며 지지를 보낸 반면 소위 성전 주인을 자처하던 제사장, 서기관, 장로들은 분노하며 이를 갈았습니다(마 21:15). 그들에게는 주님의 행위가 옳으냐 그르냐보다도 그에게 과연 그럴 자격이 있느냐? 누가 그에게 성전을 정화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느냐가 더 문제였습니다. 그랬기에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누가 이런 권한을 주었느냐?>(마 21:23)며 다그쳤던 겁니다. 사실 그렇게 보면 당시 주님의 행위는 분명 난동이었습니다. 난동이란 기존의 질서가 공인하지 않은 사람이 폭력적으로 어떤 일을 도발하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전 관리인들이 따로 있음에도 아무런 자격도 권한도 없는 일개 시골 청년이 그같은 폭력을 휘두르며 난동을 부린 것이 과연 옳았느냐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실은 주님 역시도 그들의 질문에 아무런 답을 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권위를 내세우기는커녕 도리어 권위에 도전해 싸우신 분이셨습니다. 지금도 역시 권위를 따지는 그들에게 어떤 압도적인 권위를 제시하기보다 오히려 반문으로 응수하십니다. <나도 한 가지 묻겠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에서 왔느냐 사람에게서 왔느냐?> 주님의 이 날카로운 질문이 결국은 그들을 유구무언으로 만듭니다. 만약 하늘에서 왔다고 하면 그런데 왜 그를 믿지 않느냐?는 비판을 면치 못할 테고, 사람에게서 왔다고 하면 그를 예언자로 믿는 많은 군중들의 분노를 살 것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주님은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행하는지 말하지 않겠다>며 그 언쟁을 끝내십니다.

권위란 현대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 중에 하나입니다. 이제 권위는 사회에서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종교에서도 용납되지 않습니다. 하여간 모든 권위를 타파하자는 게 현대인들의 지상과제입니다. 그것은 이 시대를 지배하는 포스트모더니즘과 함께 각성된 의식입니다. 젊은이들은 권위주의의 상징인 부모와 선생, 정치인, 종교인들을 싸잡아 구세대라며 혐오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숙정하셨던 주님도 분명 권위주의를 거부하셨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오늘날의 젊은 세대와도 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권위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습니다. 주님은 <사람에게서 난 권위>와 <하나님에게서 난 권위>를 구별하셨고, 세례 요한과 자신의 권위야말로 사람에게서 난 것이 아니었음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만약 당시 주님과 세례 요한의 권위를 기존의 질서로 입증할 수 있었다면 그들도 이미 낡은 질서에 속한 인물이었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여기서 중대한 질문을 하나 던져야 합니다. 지금 한국 교회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면 누가 과연 그것을 고발하고 대결하며 개혁할 것인가 하는 겁니다. 누가 과연 개혁의 주체가 되어 옳으냐 하는 것입니다. 요즘 교계 여기저기서 개혁이 봇물입니다. 그러나 속지 마십시오. 다 물타기입니다. 다 개혁의 대상들이 개혁 운운하며 사태를 호도하고 있을 뿐입니다. <한기총>을 온통 <장사하는 집>으로 만든 길자연 목사가 얼마 전 역시 <문제의 소굴>이 되어버린 분당중앙교회에 와서 설교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 목사를 초청해다 설교를 시킨 교회나 근신하지 않고 부른다고 넙죽와서 자기에게는 아무런 잘못도 없다는 식으로 변명한 목사나 정말 막상막하입니다. 공자는 <그 자리에 있지 않으면 그 일에 간섭하지 말라>(不在其位, 不謀其政)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오히려 이 세상 속에는 그 어떤 지위도 없었기에 항거할 수 있었고, 또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든 현실에 저항하여 일어났기에 그 사회 전체의 방향을 물을 수 있었습니다. 개혁의 주체는 우선 기존 질서에 아무런 자리도 갖지 않은 세력이어야 합니다. 기존 질서가 인정하는 권위로는 안 됩니다. 따라서 <무슨 권위로?>라며 대드는 기득권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권외에 있는 청년들이 일어나야 합니다. 아무런 권위도 가지지 않은 청년들이 교회를 강도의 소굴로 만든 오늘의 현실을 숙정해야 합니다. 주님이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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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푸른교회 노나라의별
TAG 개혁, 권위
20110514
지혜로운 아들 미련한 아들
잠 10:1-11

<솔로몬의 잠언이라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기쁘게 하거니와 미련한 아들은 어미의 근심이니라>(1절).
때마침 내일이 <청년주일>입니다. 지혜로운 청년은 부모에게 기쁨을 드리나 미련한 청년은 늘 부모에게 근심만 안깁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자식입니까?

공의의 재물과 불의의 재물
<불의의 재물은 무익하여도 공의는 죽음에서 건지느니라>(2절).
지혜로운 아들은 공의의 재물을 위해, 정직한 수입을 위해 수고합니다. 또 하나님은 그런 자를 축복해서 많은 유익을 누리게 하십니다. 또 부모 역시 그런 자식을 통해 보람을 느끼며 감사하고 안도하십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재물을 추구하는 지혜로운 자의 영혼을 결코 주리게 하시지 않으며, 여기서 말씀하는 <공의>란 곧 <정직함과 자선>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미련한 아들은 끊임없이 <불의한 재물>만을 노리며 남을 등치고 사기하는 불로소득만을 궁리합니다. 그런 자식은 부모를 한없이 불행하고 슬프게 하며 절망하게 합니다. 가난해도 정당하게 벌고, 아무리 부요를 약속해도 불의한 재물은 가차없이 물리치는 아들이 부모에게 기쁨을 드리는 효자임을 기억하십시오.

여름에 거두는 자와 추수 때 잠자는 자
<여름에 거두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나 추수 때에 자는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는 아들이니라>(5절).
매사에 기회를 잘 살려 뿌릴 때 뿌리고, 거둘 때 거두며 쉴 때 쉬는 자가 바로 지혜로운 아들입니다. 요즘은 밭에 씨를 뿌리고 모종을 심는 시기입니다. 저희 교회 밭에도 각종 야채며 감자와 옥수수를 심고 고추와 가지와 오이 모종을 심었습니다. 그래야 때가 되면 수확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미련한 아들은 남이 한창 추수로 분주할 때 늦잠이나 자며 빈둥거립니다. 게으름으로 시간을 허비하며 자신의 삶에 대해 무책임하기 짝이없습니다. 추수 때 잠을 자면 겨울은 언제 누가 준비합니까? 따라서 그런 자식은 부모에게 부끄러움을 끼치는 못난 자식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명심하십시오. 젊은 시절 지식과 지혜를 얻는 일에 고된 수고를 아끼지 않는 자는 반드시 풍성한 추수를 보게 될 것이고 젊은 시절을 나태함과 무책임으로 허송한 자식은 다가오는 겨울에 견딜 수 없는 부끄러움과 굶주림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의인의 머리와 악인의 입
<의인의 머리에는 복이 임하나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6절). 
의인의 머리는 항상 건전하고 건강하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가치만을 생각하고 추구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시와 영광을 사색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을 모색하고 궁리합니다. 그래서 그런 자의 머리에는 당연히 하나님의 복이 임하며 또 그런 자식이야말로 부모의 기쁨이자 자랑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악인의 입은 마치 악한 샘에서 쓴 물이 솟아나듯 끝없이 독을 뿜어냅니다. 그래서 주변의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상처를 입게 하고 피 흘리게 합니다. 그런 자식은 심지어 형제들도 해치며 부모의 가슴에도 비수같은 독을 뿌립니다. 부디 <악인의 입>이 아니라 <의인의 머리>로 사십시오. <의인의 입은 생명의 샘>(11절)이라 했습니다. 부모와 이웃들을 살리고 행복하게 하는 <생명의 샘>이 될지언정 쓴 물을 내므로 모든 사람들을 괴롭히고 멸망하게 하는 <악한 샘>이 되지 마십시오. <의인의 입은 생명의 샘이라도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1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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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잠언, 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