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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7/10 20090708w: 바르실래(삼하 19:31-39)

2009년 7월 8일 수요성경공부
본문: 삼하 19:31-39
제목: 바르실래

[31]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가 왕이 요단을 건너가게 하려고 로글림에서 내려와 함께 요단에 이르니 [32] 바르실래는 매우 늙어 나이가 팔십 세라 그는 큰 부자이므로 왕이 마하나임에 머물 때에 그가 왕을 공궤하였더라 [33] 왕이 바르실래에게 이르되 너는 나와 함께 건너가자 예루살렘에서 내가 너를 공궤하리라 [34] 바르실래가 왕께 아뢰되 내 생명의 날이 얼마나 있사옵겠기에 어찌 왕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리이까 [35] 내 나이가 이제 팔십 세라 어떻게 좋고 흉한 것을 분간할 수 있사오며 음식의 맛을 알 수 있사오리이까 이 종이 어떻게 다시 노래하는 남자나 여인의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사오리이까 어찌하여 종이 내 주 왕께 아직도 누를 끼치리이까 [36] 당신의 종은 왕을 모시고 요단을 건너려는 것뿐이거늘 왕께서 어찌하여 이같은 상으로 내게 갚으려 하시나이까 [37] 청하건대 당신의 종을 돌려보내옵소서 내가 내 고향 부모의 묘 곁에서 죽으려 하나이다 그러나 왕의 종 김함이 여기 있사오니 청하건대 그가 내 주 왕과 함께 건너가게 하시옵고 왕의 처분대로 그에게 베푸소서 하니라 [38] 왕이 대답하되 김함이 나와 함께 건너가리니 나는 네가 좋아하는 대로 그에게 베풀겠고 또 네가 내게 구하는 것은 다 너를 위하여 시행하리라 하니라 [39] 백성이 다 요단을 건너매 왕도 건너가서 왕이 바르실래에게 입을 맞추고 그에게 복을 비니 그가 자기 곳으로 돌아가니라


다윗이 왕위에 오른 지 40년이 되었습니다. 30세에 즉위했으니 벌써 70입니다. 더 이상 정사를 보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열왕기상 2장을 보면 그런 다윗이 왕위를 승계할 솔로몬에게 유언을 남깁니다. 그 내용은 두 가지인데, 첫째는 힘써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라는 것과 둘째는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에게 은총을 베풀고, 그의 후손들이 임금의 상에서 먹게 하라는 것입니다. 첫 번째 유언도 의외이지만 두 번째는 더욱 뜻밖입니다. 아마 솔로몬을 위시해서 주변의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했을 겁니다. 바르실래가 어떤 사람이기에 유언으로까지 남기는 것입니까?

길르앗은 예루살렘에서 200km 떨어진 요단강 건너편 시골마을입니다. 그곳 사람인 바르실래와 다윗은 어떤 관계일까요? 바르실래는 어려운 사람을 돕던 사람입니다. 곤경에 처한 사람을 사심 없이 도왔던 사람입니다. 다윗은 한 때 아들 압살롬의 쿠데타로 피난길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압살롬을 너무 믿었던 겁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있다가 졸지에 아들에게 당해서 맨발로 왕궁을 빠져나갑니다. 그래서 요단을 건너 길르앗 땅 마하나임까지 가서 피난생활을 했습니다. 다윗의 생애에서 수치스럽고 비참했던 시기입니다. 사실 다윗은 피난생활에 이력이 난 사람입니다만, 아들 압살롬을 피해서 피난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겁니다. 그러니 얼마나 마하나임에서 그 마음이 비참했겠습니까? 먹을 양식도 갈아입을 옷도 없는 시절에 다윗을 섬겼던 유일한 사람이 바르실래입니다. 하나에서 열까지 다윗을 책임졌습니다. 심신이 지쳐있는 다윗에게 바르실래는 쉴 곳과 음식을 갖다 줍니다. 권력을 쥔 사람에게는 사람이 몰리나, 권력에서 쫓겨난 사람에게는 사람이 떠납니다. 등을 돌립니다. 그게 세상의 이치입니다. 아들의 칼날을 피해 숨어사는 다윗에게 바르실래는 헌신적으로 돕습니다. 바르실래는 모범적인 그리스도인의 상입니다. 주님이 죄인과 한 식탁에서 먹고 마시는 장면, 환자들과 함께 지내는 모습과 비슷합니다. 바르실래는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정신을 제대로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그 은혜를 잊지 못해 유언에까지 그와 그 자손을 보살피라고 합니다. 우리가 바르실래처럼 살면 주님도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우리 주변에는 아들 압살롬에게 배신당한 다윗과 같은 이웃이 적지 않습니다. 그들을 돌보아야 합니다. 그게 바로 예수 정신입니다. 우리가 이 시대에 바르실래로 살아야 합니다.

바르실래는 단순히 다윗을 도왔다기보다 위험을 무릅쓰고 도왔습니다. 당시 쿠데타 세력인 압살롬이 다윗을 도운 바르실래를 가만 두었겠습니까?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해 피난 다닐 때 아히멜렉이라는 사람이 다윗을 돕습니다. 결국 그 사실이 발각되자, 사울이 아히멜렉의 가족과 친족 85명을 살해합니다. 씨를 말린 겁니다. 만일 압살롬이 바르실래의 일을 알았다면 당장 그렇게 했을 겁니다. 그러나 바르실래는 그 큰 위험을 감수하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선의를 다윗에게 베푼 겁니다. 그러니 다윗이 어찌 이 일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사실 압살롬의 기세를 봐서는 다윗의 시대가 그것으로 끝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분위기에서 끝까지 다윗을 돕기란 쉽지 않습니다. 압살롬에게 그건 반역입니다. 사랑은 희생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어떤 책임도 자기가 지겠다는 듯이 바르실래는 끝까지 최선을 다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피난길에 오른 이웃을 돕지 못하는 이유가 희생과 손해가 두렵기 때문입니다.

바르실래는 사심이 없었습니다. 다윗을 돕는 데 조건이 없었습니다. 다윗이 지금은 비록 도망 다니는 신세지만, 언제가 왕권을 회복해 예루살렘으로 복귀할 때 한 자리 얻으려는 계산이 바르실래에게는 없었습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그 대목입니다. 압살롬의 쿠데타 세력이 제압되었습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환궁합니다. 그때 다윗이 제일 먼저 찾은 사람이 바르실래입니다. 33절입니다. “왕이 바르실래에게 이르되 너는 나와 함께 건너가자 예루살렘에서 내가 너를 공궤하리라.” 피난 동안 네가 나를 공궤했으니 이제 내가 너를 공궤하리라는 겁니다. 그러자 바르실래는 이렇게 말합니다. 34절 이하입니다. “[34] 바르실래가 왕께 아뢰되 내 생명의 날이 얼마나 있사옵겠기에 어찌 왕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리이까 [35] 내 나이가 이제 팔십 세라 어떻게 좋고 흉한 것을 분간할 수 있사오며 음식의 맛을 알 수 있사오리이까 이 종이 어떻게 다시 노래하는 남자나 여인의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사오리이까 어찌하여 종이 내 주 왕께 아직도 누를 끼치리이까.” 바르실래가 극구 사양하고 있습니다. 절대 반대급부를 노리고 다윗을 돕지 않았습니다. 이게 바로 그리스도인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살면 세상 사람으로부터 손가락질 받지 않습니다. 우리는 누구를 도울 때 항상 사심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것을 세상도 나도 다 알고 있습니다. 바르실래는 원색적인 사랑으로만 다윗을 도왔습니다. 바르실래는 아득한 옛날 사람이지만 그리스도인이 모범으로 삼아야 할 귀한 사람입니다. 천하의 다윗이 죽으며 유언으로까지 챙길 수밖에 없었던 사람 바르실래를 배웁시다.

Posted by 푸른교회 노나라의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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