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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18일 주일오후예배/여전도회 헌신예배
본문: 행 18:1-4
제목: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1]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3]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요즘은 교회가 대 사회에 대해 큰 영향을 못 미치는데, 초대교회 때는 달랐습니다. 초대교회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순교를 각오한 성도들의 헌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초대교회 성도의 희생적인 헌신의 좋은 예입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부부지간입니다. 남편은 아굴라요, 부인은 브리스길라인데, 성경에는 브리스가로 소개하기도 합니다. 오늘 여전도회 헌신예배를 맞아 이 말씀을 상고하겠습니다.

이 부부의 아름다운 점은 부부가 함께 신앙생활한 것입니다. 부부가 나란히 신앙생활하기는 요즘 쉽지 않습니다. 아내 신앙 좋다고 남편 신앙 좋으란 법도 없고 그 반대도 그럴 법은 없습니다. 오히려 현실은 남편은 잘 해보려고 하는데, 아내가 협조 안하든지 또는 그 반대든지일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는 다릅니다. 이들 부부의 이름이 신약에 여섯 번 나오는데, 언제나 함께 이름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항상 함께 신앙생활했다는 겁니다. 이들 부부는 거의 대등한 열심을 품고 의기투합해 함께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겼습니다. 세상에서 부부가 함께 하는 것보다 아름다운 그림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들 부부의 생활이 남달리 순탄했거나 안정적인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최소한 네 번 이상을 여기저기로 옮겨 다녔습니다. 처음에는 고향인 본도에 살다가, 로마로 이주하고, 또 글라우디오 황제가 유대인 추방령을 선포하는 바람에 고린도로 쫓겨나서, 거기서 바울과 만나 에베소로 갑니다. 글라우디오 황제가 죽자 거기서 다시 로마로 이주합니다. 당시가 세계화 시대도 아닌데, 지구촌 시대도 아닙니다. 요즘 이사나 이민은 어려울 게 없습니다. 당시에 이주하거나 이민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웠고 큰 모험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부부는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서건 함께 손발을 맞춰가며 신앙생활에 열심이었습니다.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귀감이 되어 마땅합니다. 목회자 눈에는 언제나 부부가 나란히 앉아 예배드리는 모습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짝 가정은 왠지 아쉽고 외롭게 보입니다. 바울도 그렇게 본 것 같습니다. 바울도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통해 많은 위로와 힘, 보람을 얻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주 이 부부에 관한 언급을 하는데, 여러분, 우리도 이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닮으십시다. 우리 교회 여전도회 회원들 가정도 이 가정을 닮읍시다. 우리 교회도 아직 짝 가정이 많습니다. 올해는 다 부부가 나란히 주님 앞에 나오는 역사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 부부는 말씀에 능했습니다. 사도행전 18장 24절 이하를 보면 알렉산드리아 출신으로 언변도 좋고, 웅변가가 소개됩니다. 아볼로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들 부부도 그의 집회에 갔다가 설교를 듣습니다. 역시 아볼로는 설교가 논리적이었고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가 아볼로의 설교를 듣고 문제점을 지적합니다. 가장 중요한 복음적 요소가 결여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아볼로의 설교 내용에 복음이 빠져있다는 것을 이들 부부가 발견한 겁니다. 이것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의 성경 이해가 보통이 아니었음을 나타내 줍니다. 이들 부부는 복음의 기반, 말씀의 기반이 탄탄했습니다. 무조건, 맹목적으로 신앙하지 않았습니다. 목회자도 아니고 설교가도 아닌데 어떻게 그들이 성경과 복음에 능했을까요? 그들이 언제 그렇게 복음으로 교육을 받고 무장했을까요? 사도행전 18장 11절을 보면,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서 그들 부부와 만나 일 년 육 개월 동안 말씀을 가르친 겁니다. 이때에 그들 부부가 말씀으로 무장했습니다. 사실 그때 배운 말씀으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평생을 말씀 위에 굳게 서서 헌신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초대교회는 말씀으로 훈련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절대 직분을 주지 않았습니다. 디모데전서 3장을 보면 새로 입교한 사람에게는 직분을 주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아직 말씀의 훈련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점에서 이들 부부는 좋은 본보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들은 부부가 함께 말씀을 익혔고, 말씀으로 무장했습니다. 여러분, 부부가 함께 이들 부부처럼 말씀 공부에 전념하십시오. 감동적인 설교나 웅변을 한다고 해서 그들 부부가 넘어간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분별력을 가지고서 설교를 들었습니다. 이 정도는 되어야 합니다. 말씀에 대한 바른 이해 없이는 말씀에 대한 참된 깨달음 없이는 절대 진정한 믿음도 헌신도 봉사도 불가능합니다. 말씀에 대한 기반 없이 하는 헌신은 언제나 위험합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는 장막을 짓는 장인들이었습니다. 바울과 직업이 같았고, 그래서 바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 부부의 생애 최대 목표는 돈이 아니라 말씀에 대한 봉사였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직업이 부업입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그랬습니다. 말씀을 전하고 복음에 헌신하는 것은 본업이고, 장막 짓는 것은 부업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삶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푸른교회 양대 여전도회 회원들도 부부가 좀 더 말씀 훈련에 올해는 많이 힘쓰시길 바랍니다. 무엇보다 말씀으로 탄탄하게 무장하는 복된 부부되시길 기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들 부부는 가장 확실한 바울의 동역자였습니다. 18장 18절 이하를 보면 바울이 1년 6개월 이상 체류했던 고린도를 떠나고 있습니다. 18절입니다. “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바울이 고린도를 떠나 수리아를 거쳐 에베소로 가는데, 그와 동행한 사람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였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여행이 아닙니다. 아예 다 싸들고 이사가는 중입니다. 완전히 고린도에서는 철수하는 겁니다. 바울이 에베소 전도에 나서자 그들도 고린도 생활을 청산하고 바울을 따라 나서고 있습니다. 대단한 결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에베소로 이주한 후에도 그들의 헌신은 지극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결국 이들 부부가 개척합니다. 잘 들으십시오. 에베소 교회가 어떤 교회인 줄 아시지요? 초대교회 가운데 가장 유명한 교회 가운데 하나입니다. 바울이 목회했고, 그 후로 디모데가 목회했고, 나중에는 사도 요한이 목회한 교회입니다. 요한이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까지 모시고 와서 목회한 교회이며, 밧모섬에서 귀양까지 갔다와서 그 에베소에서 죽고,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도 거기서 죽었습니다. 의사 누가까지도 깊이 관계했던 그 유수한 에베소 교회를 이들 부부가 개척한 겁니다. 그들의 헌신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후에 에베소를 떠나 로마로 갑니다. 고린도전서 16장 19절입니다.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가 어느새 로마에 와 있습니다. 지금 바울은 로마 감옥에 있는데,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그 집에 있는 교회가 문안한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로마에 있는 그의 집이 로마 교회가 되었다는 얘기입니다. 초대교회는 아직도 약했기에 독립된 예배당을 가질 힘이 없었습니다. 아직 기독교가 공인되지도 않았을 때입니다. 그래서 특정한 성도의 집에 모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요즘 우리 같으면 가끔 모여서 구역예배 드리기도 쉽지 않습니다. 성가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밤낮으로 교인들이 내 집을 드나든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정말 주님을 위해 자기 삶을 다 내어놓은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로마로 재입성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는 로마에서 그렇게 살았습니다. 자기의 사생활은 없었습니다. 집을 교회로 개방한 겁니다. 에베소에서도 그랬는데, 로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로마서 16장 3절을 보면,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고 바울이 말합니다. 계속 이어지는 4절입니다.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가 목회자인 바울과 여러 몸 된 교회를 위해 자기들의 목숨까지도 내놓았다는 겁니다. 이것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에 대한 사도 바울의 생생한 증언입니다. 바울은 선교 사역이 참으로 힘들고 처절했지만, 그래도 눈물겹도록 고맙고 다행스러운 것은 이런 부부가 희생적이고도 헌신적으로 동역했기 때문에 천만 다행이었습니다. ‘내 목숨을 위하여 저희의 목이라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고 있다’는 말씀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그토록 핍박하던 로마가 기독교 앞에 굴복했습니다. 로마가 마침내 복음에 항복을 선언합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세계화되었습니다. 복음으로 로마를 제패했기에 기독교가 세계 종교가 된 겁니다. 이런 2000년 기독교 세계화의 뿌리에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의 헌신이 놓여 있습니다. 이 시대의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는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 교회 여전도회 회원들의 가정이 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의 가정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이런 바람과 꿈이 있어서 제1여전도회를 브리스길라로 명명했습니다. 아굴라 없는 브리스길라 없고, 브리스길라 없는 아굴라 없습니다. 부부가 나란히 헌신하고, 복음을 위해, 교회를 위해 헌신하십시오. 주님은 그런 가정과 부부를 통해 행복해 하십니다.

Posted by 푸른교회 노나라의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