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사는 이야기

‘코인 가치는 0원’이라면서 ‘세금 걷겠다’는 금융당국

증시보다 돈 몰리는데 제도 미비

20일 비트코인이 장중 6600만원대까지 폭락하며 불과 하루 만에 1000만원가량 빠졌다. 이날 서울 강남구의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에서 직원이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시세 전광판을 살펴보고 있다. 최현규 기자
국내에서 암호화폐 투자 열풍이 거세게 불면서 투자자 보호를 위한 관련 법이나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일단 암호화폐 관련 불법 행위에 대한 범정부 차원의 특별 단속을 하기로 했으나, 뒤늦은 조치라는 비판도 나온다. 그렇다면 최근 암호화폐 투자 실태를 바라보는 금융 당국의 솔직한 심정은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면 암호화폐는 투기 대상에 불과하다는 3년여 전 정부 입장에서 변하지 않았다. 다만 암호화폐 거래 규모가 증시 거래 대금을 훌쩍 뛰어넘는 등 투자 열기가 심상치 않자 추이는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20일 금융위 관계자는 최근 암호화폐 열풍에 대해 “비트코인 등이 계속 오르는 이유는 실질적 가치 때문이 아닌, 자금 세탁이나 세금을 내지 않고 증여·상속을 하려는 불법적 수요가 작용한 것”이라며 “이외에는 ‘버블(거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단언했다. 암호화폐의 내재가치는 ‘제로(0)’라는 기존 생각에 변함이 없는 것이다.

이는 2017~2018년 암호화폐 열풍 때의 정부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당시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암호화폐에 대해 “돌덩이를 돈 주고 거래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유하면서 거래소 폐지까지 거론했었다.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은 “암호화폐를 자산으로 인정할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익명성, 비대면성이 특징인 암호화폐 거래는 범죄와 불법 자금 은닉 등 자금세탁에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힌 바 있다.


문제는 정부 입장과 무관하게, 막대한 규모의 투자 혹은 투기 자금이 암호화폐 시장으로 몰려들고 있다는 점이다. 이날 암호화폐 데이터 분석 업체 코인게코에 따르면 국내 4대 거래소(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의 20일 오후 2시 기준 총거래대금은 389774억원에 달한다. 해당 거래소들은 은행 실명계좌 발급이 가능해 개정 특정금융거래정보법(특금법)상 신고 이후 영업을 지속할 가능성이 큰 곳들이다.

지난달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의 일평균 거래 대금은 각각 9조4261억원, 9조7142억원이다.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들의 거래 규모가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의 거래 대금을 훨씬 웃돈 것이다.


그러나 금융 당국은 섣불리 규제에 들어갈 수 없다는 입장이다. 공시 등 최소한의 투자자 보호 가이드라인은 마련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 금융위 관계자는 “암호화폐 관련 공시 기준 등 규정을 만드는 게 과연 투자자들을 위한 것인지도 생각해볼 문제”라고 대답했다. 가이드라인 등을 내놨다가 암호화폐가 제도권에 가까운 투자 자산이라는 잘못된 시그널이 갈까 봐 우려된다는 취지다. 같은 맥락에서 업권법 추진은 더더욱 먼 얘기다.

결국 금융 당국이 암호화폐 투자와 관련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투자에 유의해 달라”는 원론적인 말뿐이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최근 한 간담회에서 암호화폐 거래소의 국내 상장 문제를 재검토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코인 거래소는 코멘트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는 사이 암호화폐 업계에서는 여러 모순이 발생하고 있다. 먼저 지난달 25일부터 시행된 개정 특금법과 시행령에 따라 암호화폐 거래소는 은행으로부터 실명 확인 입출금계좌를 발급받아 당국에 영업 신고를 해야 한다. 그런데 구체적인 발급 기준이 미비해 거래소 검증 의무가 은행에 전가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런 상황에서 굳이 리스크를 지고 거래소에 실명계좌를 발급해줄 이유가 없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일률적인 코인 공시 기준이 없는 탓에 허위 공시 의혹을 받는 종목이 버젓이 대형 거래소에서 거래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업권법이 없어 거래소는 각자 판단 기준에 따라 자체적으로 코인 상장폐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투자자들 사이에선 내년 시행되는 가상자산 소득 과세에 대한 불만도 끊이지 않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암호화폐 거래 차익을 ‘기타소득’으로 분류, 세율 20%로 과세할 예정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암호화폐가 ‘도박’ 그 이상 이하도 아니라는 게 정부 입장이라면 과세 근거는 다소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금융 당국은 이 역시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원칙을 되풀이하고 있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

GoodNews paper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