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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세율 높은 한국… 이건희 상속세는 스티브 잡스의 3배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고 이건희 삼성회장 소장 문화재와 미술품 기증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화면에 비친 기증품은 국보 216호로 조선 후기 화가 겸재 정선이 그린 ‘인왕제색도’다. 서영희 기자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유산을 상속받게 된 유족들은 28 12조원가량을 상속세로 납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주가 2011년 사망했을 당시 유족에게 매겨진 세금 28억 달러(약 3조4000억원)의 3배가 넘는다. 이처럼 천문학적 액수가 나온 이유는 우선 이 회장이 남긴 유산이 잡스보다 많고, 미국보다 한국의 상속세율이 높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회원국 중 한국은 상속세 최고세율이 50%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일본이 55%로 표면적으로 가장 높지만 한국에는 상속자산이 최대주주 지분일 경우 20%를 할증평가하는 ‘최대주주 할증평가’ 제도가 있다. 30억원을 초과하는 지분에 대해 50%의 상속세율을 매기고 여기에 20%가 할증되기 때문에 실질 최고 상속세율은 60%가 된다. 이 회장이 남긴 삼성 계열사 주식이 이에 해당한다.


이 회장 유족이 신고한 상속세 12조원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11조원은 삼성 계열사 지분 상속에 따른 세금이다. 이 회장의 주식 지분 상속재산가액 19조원 중 60%가량인 11조원이 이에 따른 상속세다.

만약 이 회장 유족이 계열사 지분 상속분을 미국에서 냈다고 가정하면 최고세율 40%를 적용받게 된다. 이 경우 이 회장 유족이 내야 할 세금은 7조6000억원으로 줄어든다. 스티브 잡스가 낸 상속세 3조4000억원만큼 덜 내도 되는 셈이다.

미국보다 상속세 최고세율이 낮은 국가는 많다. 독일이 30%, 영국 40%, 프랑스 45%다. 이들 국가는 최대주주 할증평가 제도도 없다. 뉴질랜드 캐나다 호주 등은 아예 상속세가 없다.

이렇다 보니 대기업 창업주들이 사망할 때마다 상속세수가 급증하는 현상이 벌어진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납부된 상속세 중 최고액은 2018년 고 구본무 LG그룹 회장으로부터 재산을 물려받은 구광모 현 회장 일가에 부과된 9215억원이다. 다음으로 지난해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 유족이 신고한 4500억원가량이다. 2019년 사망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상속인 조원태 회장 등은 2900억원 규모로 알려졌다.

상속세가 최소 수천억원이 되다 보니 이를 부담해야 하는 오너 일가는 5년 연부연납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이 제도는 첫 신고 때 전체 세금의 ‘6분의 1’ 금액을 낸 뒤 나머지를 5년간 연이율 1.2%를 적용받아 분할납부하는 방식이다. 삼성 역시 30일 국세청에 상속세 신고와 함께 12조원의 6분의 1인 2조원을 납부할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10조원은 2026년까지 5년간 분납해야 한다. 연부연납제도를 활용할 경우 유족들은 본인 소유 주식 등 납부금액의 120%를 담보로 제공해야 한다. 국세청 관계자는 “상속세 신고가 들어올 경우 9개월 동안 신고 내용이 정확한지 조사를 진행한다”면서 “조사가 충분치 못하다고 판단될 경우 조사 기한이 연장될 수 있다”고 말했다.